[월간산] [이 한 장의 사진 | 김성선 여행문화학교 산책 대표] 사흘간 고립되었어도 두려움 없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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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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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016.11
1993년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국가대표 상비군 동계훈련 중 폭설에 고립
1993년 1월 당시 22세의 김성선은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에 참가했다. 에베레스트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어린 나이에 대전충남연맹 대표 3명 중 한 명으로 뽑혀 상비군 훈련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훈련은 치열했다. 전국 지방연맹 대표로 온 이들은 6개 조로 나눠 등반을 했다. 지도 상의 지점과 지점을 직선으로 그어 그대로 등반하는 훈련이었다.
9명이 한 조가 되어 설악동을 출발했다. 비선대를 지나 천불동으로 들어선 이들은 귀면암을 지나 믹스등반으로 어렵게 중청에 닿았다. 이들 중 텐트를 가져온 사람은 김성선이 유일했다. 막노동을 해서 29만 원을 주고 어렵게 구입한 버팔로 5인용 텐트였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설산을 꿈꾸었던 그는 이번 훈련을 위해 나름 큰돈을 들였다. 텐트 외에도 영원무역에서 만든 최초의 국산 고어텍스 등산복 상하의를 입고 온 것이다. 둘째 날 대청봉을 오른 후 죽음의 계곡에서 믹스등반 훈련을 하고 희운각으로 내려온 이들은 대피소 앞 계곡에서 비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날씨는 좋았고 쌓인 눈도 많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소청과 봉정암을 거쳐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여성 에베레스트원정대를 만났다. 폭설이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지현옥, 최오순을 비롯한 여성 대원들은 예정된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을 택했다.
그러나 사명감에 불탔던 조원들은 다음 목적지인 오세암으로 향했다. 왼쪽 페이지의 사진은 수렴동에서 오세암으로 러셀하는 대원들의 모습을 김성선 대원이 찍은 것이다.
오세암에서는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잠자리를 내어주고 라면을 끓여 주었다. 이튿날부터 더 큰 고생길이 열려 있음을 직감한 대원들은 1인당 4~5개의 라면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폭설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2m가 넘게 눈이 쌓였다. 오세암 화장실과 숙소 한 채의 지붕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있었다. 오세암의 유선전화도 끊어진 상태였고 무전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원들은 다음 목적지인 마등령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세암에서 마등령으로 이어진 가파른 길에 2m 넘는 신설이 쌓여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러셀이 되지 않아 두 명씩 배낭을 벗고 앞에서 교대로 동굴 파듯 러셀을 했다. 때문에 하루 종일 눈을 헤치고 헤쳐도 마등령에 올라설 수 없었다. 도중에 그가 가져온 버팔로 5인용 텐트에 9명이 끼어 잤는데, 결국 거금을 들여 구입한 텐트가 찢어졌고 그의 마음도 찢어졌다.
다음날 가까스로 닿은 마등령에는 간이매점이 있었는데 매점 관리인 역시 눈 때문에 갇힌 상태였다. 덕분에 대원들은 매점 음식을 깡그리 비웠고 좁은 매점 안에서 쭈그리고 자야 했다. 다음날 날씨가 맑아지자 지체 없이 비선대를 향해 러셀하는 와중에 이들을 찾으러 온 구조헬기에 발견되었다.
이들의 위치를 확인한 연맹 측은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팀에서 구조대를 꾸려 마중 나왔다. 이때 대전에서 지원차 나온 선배 이기열씨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안아 주었다. 눈물의 조우로 며칠간의 고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9명 모두 무사 귀환했으나,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다음 스케줄이던 산악스키훈련이 취소되었다. 당시 공식 산악스키훈련은 최초였기에 모두들 기대가 컸는데 이로 인해 취소되어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김성선씨는 말한다.
1992년 동계 훈련차 설악산을 찾았을 때의 김성선씨.
김성선(46)씨는 이후 학사장교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했다. 대전쟈일클럽 소속이던 그는 히말라야 니레카(6,159m) 를 등정한 후배 이상은씨와 결혼했다. 2000년 이후 전문등반 대신 아웃도어 쪽으로 눈을 돌려 2005년 대전둘레산잇기 조성에 참여했으며, 2009년 고 박영석·송철웅씨 등과 함께 한반도 해안선 요트일주를 했다. 2013년 KBS 영상앨범 <산>에 출연해 부탄과 네팔 서부 히말라야 탐사를 했다. 지난해부터는 청소년도보여행과 아웃도어체험, 기업캠핑연수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문화학교 ‘산책’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김성선씨는 “당시 제가 거의 막내였기 때문에 선배들의 뜻에 따라 움직였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며 “그만큼 다들 자신감 넘쳤고 팀워크가 좋았다”고 회상한다.